실로 오랜만 지금-여기

실로 오랜만에 내가 블로그란 걸 시도했었단 사실을 인식하고, 아이디 비밀번호 입력에 몇번씩 실패해가며 다시 이곳에 들어왔다. 여긴 지난 1월부터 그냥 방치되어 있었다. 굳이 그 이유를 찾아본다면, 게으르고 끈기 없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올해 무수히 탄자니아를 다녀간 출장팀들. 그 중 최고는 각종 조직 평가 및 감사. 다구리를 당했던 7-9월의 무지막지함을 생각하면 지금 나는 무척 행복하다. 그래..다 이유가 있어.

그러면 왜 다시 블로그를 찝적거리고 있는가. 얼마전부터 페이스북 친구신청이 늘면서 페북 세계로 빠져들 즈음...그 짧막한 글들이 좀 허무맹랑해 지기만 하고, 공문을 쓰는 것 만큼이나 허허로운 기분에, 내 맘대로 지껄이더라도 좀 더 크고 하얀 바닥에다가 끄적거리고 싶어서. - 그래도 페북에서 다시 만난 진짜 '친구'들은 참으로 반갑다. 그리고 사실 퇴근 후 좀 심심하기도 해서.

짬짬이 사진도 올려보고, 탄자니아 얘기도 해볼 요량. 

아래 사진은 회사 들어가는 길, 모로코 사거리 신호를 기다리며.
이곳 생활의 매력은 내 시야의 2/3가 늘 하늘과 구름이라는 것. 

 


그림으로 기억되는 서사 읽은것

어떤 소설들은 서사가 아닌 시각적 장면으로 기억된다.
덕분에 제목과 저자가 생각나지 않으니 읽지 않은 줄 알고 다시 책을 집어드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전경린의 소설이 그랬고, 한강의 소설이 그랬다.

그치만 신기하게도 그네들의 소설을 다시 집어들었을 때, 단 두 줄을 넘지 않았는데도
그 소설이 내게 각인시켜줬던 그 장면들은 선연하게 내 기억의 저장고에서 도드라졌다.
그 서사와 장면이 드디어 나의 것이 된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첫 번째 코고는 소리를 사랑했다. 남자의 입에 따뜻한 국물과 밥이 들어가 위벽을 적시는 순간도 사랑했다. 여자의 몸에 남자의 그것이 탄력 있게 부딪치는 때도 사랑했다. 그것이 자신의 틈을 적시며 밀고 들어올 때도 사랑했다. 그러나 그보다 가장 사랑하는 것은 남자가 잠드는 순간이었다. 남자의 의식이 시간과 공간의 바깥으로 아득히 밀려나가 따스한 대하를 흐르는 작은 배처럼 느껴졌다. 여자는 배를 쓸던 손을 멈추었다. 장기들을 차곡차곡 담아 솔기 없이 기운 자루 같은 배는 탄탄하고 질겨 안심이 되었다. 여자는 마주 잠든 남자의 콧바람을 맨 어깨에 느끼며 간지러워서 큭 웃었다. 남자의 코고는 소리는 뒤척일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변주되었다. 여자는 남자의 콧바람이 나오는 곳으로 손바닥을 내밀어 살랑살랑 흔들다가 문득 그의 몸통을 두 팔로 꽉 끌어안고 겨드랑이 아래로 얼굴을 밀어넣었다....   전경린, 천사는 여기 머문다 I (볼드체는 필자 강조)



93.7% [Tanzania]


분기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이제야 지난 분기의 주요 뉴스들을 보다가...
지난 10월에 있었던 탄자니아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탄자니아 여당 CCM(Chama Cha Mapinduzi, Party of Revolution)이 93.7%로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는 소식.
당연하게도 야당측의 부정선거 논란이 이어졌지만, 그것이 재개표 등의 추후 조치 요구로는 연결되지 않는 듯하다.
(대학생 노동자들의 시위는 사실 기대도 못한다.)

우리 현지직원에게 작금의 이러한 사태가 어떻게 가능한지 따져 물은 결과,
탄자니아 지방에서 실시되는 CCM의 선거운동 전략은 자기들이 Nyerere의 당이라 주장하는 것, 그것뿐이란다.
그거 하나면 표를 얻기에 충분하단다.

Nyerere는 탄자니아 건국의 아버지, 그의 이름 앞에 언제나 따라붙는 수식어는 Mwalimu(선생님).

농촌지역에는 아직도 서거한지 10년이 된 Nyerere가 대통령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는데.
이런 '무지'로 인해 CCM은 내가 아는 다당제 민주국가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수치로 압승을 거둘 수 있는 것인데.

한편, 몇몇 논설에서는 그럼에도 탄자니아의 경제발전을 위해 다당제가 과연 적합한 정치체제인가를 의심하기도 한다.
(물론 탄자니아의 민주주의가 진정한 내생적 민주주의가 아닌 원조를 위한 외생적인 그것이라는 의견 역시 발견할 수 있다.)

현 집권여당이 93.7%의 수치로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뒀다는 건,
이곳이 정치적으로 갈길이 너무나너무나 멀다는 걸 분명히 알려주는 수치다.
그도그럴 것이 탄자니아는 독립 이후 한번도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올해 있을 탄자니아의 총선이니 대선이니, 그 결과는 뻔하다.
재미없다.

그래도 일단은 아프리카에서 보기드문 정치적 안정을 일궈낸 국가라는 데 점수를 줘야겠지만.

우리의 그 '잃어버린 10년'이 그립다.



과거란... 지금-여기

과거란, 모든 과거는 각색된 기억의 총체라고, 누군가 그랬다.
그래 어느 소설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그 기억들을 각색해내는 걸까.
왜 또 지금일까.

이렇게 당황스런 순간들이 앞으로도 더 많을까?
참 당황스럽다. 당황스러워.


KOICA 대탄자니아 식수개발사업 관련 기사 [Tanzania]


Hakuna Maji, Hakuna Uhai! (스와힐리어로 '물 없이는 삶도 없다')

지난 12월 셋째주 동아일보 정치부 김영식 차장의 표제 건 취재가 진행되었다.
탄자니아 다레살람, 신양가 및 잔지바르를 일주일만에 방문하는 빡센 일정 중에
나는 다르와 신양가 취재에 동행했고,
그 결과로 오늘자 동아일보 신문에 '2010년 대한민국이 뛴다' 기획기사 1회로 관련 내용이 실리게 되었다.

http://news.donga.com/3/all/20100101/25149722/1
http://news.donga.com/3/all/20100101/25150100/1

현지에서 진행하는 취재지원 업무 요령을 알게 된 계기였다.
현지 사정을 조금이라도 더 아는 사람이 보다 더 정확하면서도 풍부한 기사 작성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인터뷰 시 인터뷰이에게서 꼭 필요한 소스를 얻어낼 수 있도록 중요 질문들을 적시에 던져야한다. 
물론 관련 자료를 미리미리 확보해 놓고, 현지 일정을 원활하게 진행토록 관련자들로부터 긴밀한 협조관계를 형성하는 건 기본.

동시에 우리 KOICA가 진행했던 '도도마 및 신양가 식수개발사업' ('06-'08/150만불) 현장점검이 실시됐다.
같은 시기에 동 사업 종료평가 차 김재곤 박사(지질학)가 동행하였고,
우리 사업의 성과 및 한계를 직접 들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역시 주어진 시간 내에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평가를 위해서 현지 사무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아무리 급하게 진행된 평가 일정이라도 사업에 대한 이해가 높은 현지 이해관계자들과의
일정 주선은 사전에 반드시 준비되어야 할 사항.
평가의 근거자료가 될 만한 현지 생산 자료들을 얻어내는 것 역시 나의 역할일테고.

이번에도 개별 사업이 우리 협력국가들 전반에 얼마나 '지속적으로' '효과적'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화두가 되었다.
직접수혜자들의 환대와 '감사하다'는 말에 '혹' 해서는 안된다.

아래는 신양가 주 및 신양가 주 바리아디 군의 표제 사업현장 평가 및 취재 관련 사진들.


* 마지막 사진을 찍을 때, 서로의 어깨를 두르며 'In solidarity' 를 조용히 되뇌이던
  현지 정부 관계자의 한 마디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아...그리고 아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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