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치의 낮과 밤 - 더운 크리스마스에 즈음하여

남반구의 크리스마스, 하면 떠올랐던 것은 크리스마스 즈음 9시 뉴스 마지막 오늘의 영상 뭐 그런 시간에 산타모자 쓰고 서핑하는 사람들 정도? 워낙 크리스마스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아서 그런지, 아님 계속 더워지기만 해서 그런지 더운 크리스마스는 내게 별 감흥이 없다. 그래도 하루 쉬는 날이라 근처 비치에 다녀왔고, 비치에서 오랜만에 여유있는 시간을 보낸 것. 특히 정말 오랜만에 책을 읽은 것이 마냥 좋았다!

읽고 있던 책은 정말 일하기 싫을 때,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를 꿈꾸면서 샀던 여러 사진책들 중 하나.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사실 클래식 카메라 소개가 대부분인데 난 이 사진작가들이 카메라를 핑계(?)로 세상을 자유롭게! 휘저어 다니는 이야기들에 매료됐다. 특히 내가 밟았던 곳들의 사진이나 글들이 소개될 때는 어김없이 짜릿함이 온 몸을 급습! - 역시 내 영혼은 중국 서부나 티벳 뭐 그런 곳에 있는게 분명하다. 위의 페이지는 사마르칸트. 그 때는 몰랐지만 사실은 참 재밌고 맘 편하게 공부했던, 다시 말해 그리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던, 대학원 시절에 잠시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 갔었는데, 그 때 가이드가 참 예뻤던 게 기억난다. 근데 그 때 같이 있던 이들은 뭐하고 다들 지내는지. 

왜 나는 사진작가가 되지 못했는가, 라는 하나마나한 의문으로 낮시간을 보내다 저녁 시간에 조금은 기묘한 느낌의 장면을 발견했다. 이 곳의 자연은 인간과 조화될 수 있는 타협가능한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순응해야 하는 초월적 존재라는 생각이 종종 드는데...이 나무가 그랬다. 어둠 속에서 막 튀어나와 걸어나오고 있는 듯한 커다란 나무는 마치 동적인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듯 했다. 정면에서 비춰진 조명 덕에 그 뒤의 어둠과 극적인 컨트라스트를 이루어 그 느낌이 더욱 강렬했다. 인간을 위한 저 작고 하찮은 의자들을 보니 더더욱. 사실 너희 의자들의 원형은 저리도 늠름한데. 음. 어쨌든 남반구에서 맞는 생애 첫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by iconclasm | 2009/12/30 03:40 | 다닌곳 | 트랙백 | 덧글(0)

겨울의 의미

내가 30년 간 경험한 그 '겨울'이 부재한 곳에서 살면서 겨울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 이 상대성의 시대에 '부재'와 '다양함'을 경험하는 것은 지혜로운 삶의 필수 조건이다.

겨울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거다.
겨울을 나기 위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부터 겨울을 대비해서 부지런히 준비하고, 긴장하는 사람들과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들 간에는 당연히 차이가 있겠지.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회들 역시 분명 다를 것이고.

왜 어떤 나라들은 잘 사는데, 또 다른 나라들은 못 사는 걸까, 왜?
라는 질문 앞에 여러가지 대답이 가능할텐데, 그 중에서 분명하지만 선뜻 말하기 힘든 원인이 바로 기후조건 인데...

적도 근처의 나라들 중 개도국 아닌 나라가 어디 있을까?
싱가폴이나 몇몇 산유국들을 제외하면 없는게 사실.

허나 사회과학 훈련을 받은 사람들, 바꿔 말하면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데 하나의 확실한 답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리고 인간 의지의 산물을 반드시 주요 변수의 하나로 상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기후나 자연환경 같은 구조적 변수에 사회 현상을 100% 의탁하는 건 아주 불편한 일.

그런데 이렇게 연중 기후가 비슷하다가, 더 더워지기만 하는 다레살람에 살면서
나는 겨울 부재의 경제사회적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동시에 작지만 강한 우리 살람들이 가진 앙칼진 기질 역시
알싸한 겨울을 경험해왔고, 아시아 대륙 변방에 위치한 덕(?) 아니겠는가 싶다. 


봄에는 여름을, 여름에는 가을과 겨울, 그리고 한 겨울에는 다가오는 새해 계획을 세우는 데 분주해야 한다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 이지만, 이 곳에서는 따가운 태양과 적절히 타협해야 하겠지.
그래도 그래도 나는 언제나 겨울을 마음 속에 두고 살련다.

by iconclasm | 2009/12/15 05:12 | 지금-여기 | 트랙백 | 덧글(1)

마사이 마을에서 만난 바오밥

10월 말 무작정 떠난 아루샤. 그리고 친구 덕에 우연히 가게된 마사이 마을.
정확한 이름도 모르고 마사이 마을이란 얘기에 따라 나섰다.

 

산 중턱에 드문드문 보이는 바오밥, 이렇게 평지에 서 있는 바오밥.
이름도 맘에 드는 바오밥.

생떽쥐뻬리는 바오밥을 보고 소행성 B612를 상상했을지도 모를일이다.
바오밥과 내가 같은 행성에 살고 있다는 게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다.

해 질녁 바오밥을 바라보던 순간은 성스럽기까지 했다.

이렇게 여여히 서있는 바오밥을 다시 보는 날까지
나도 그렇게 좀 살아봐야지 싶다.


by iconclasm | 2009/12/14 05:40 | 다닌곳 | 트랙백 | 덧글(1)

Tanga 방문

지난 10월 8-9일 우리 신규단원분들과 탕가에 다녀왔다.
탕가는 다레살람 북쪽에 위치. 버스로 약 5시간 거리에 있는, 탄자니아 제2의 항구도시다.

기존단원분들 근무지인 중등학교들을 둘러보고, 수업 참관도 했다.
잠시 봄보병원을 들렀고, 마지막으로 농기계대학에서 단원프로젝트를 확인 후 다르로 귀가..

아래는 방문했던 학교들 모습.  
 

간단한 사진 설명.
수업 제일 열심히 듣던 학생, 교실 문, 교무실 앞, 참관수업 가는 길 - 단원들의 뒷모습,
수업 중 칠판, 한창 시험중인 학교의 한 게시판.  

 - 연정아 학생들에게 보여줄만한 사진들이기를 바란다 ^^
   다른 사진들도 있는데, 시간이 넘 오래걸려서 다음에 다시 올릴게.



by iconclasm | 2009/10/21 04:20 | 다닌곳 | 트랙백 | 덧글(0)

素數


....소수는 아주 깔끔하고 우아한 숫자죠. 협동하기를 거부하고 바뀌거나 나뉘지 않는 숫자들, 언제까지나 그 자체만으로 남아있는 숫자들. 그래서 우리는 소수들을 차례로 뽑아 낸 다음 길을 건너가서 샌드위치를 먹었죠. .... Paul Auster, '우연의 음악' 중

1과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나뉘어지는 양의 정수, 소수.

소수에 이끌린 적이 있었는데,
얼마전 읽은 폴 오스터 책에서 소수에 대한 내 막연한 느낌을 적확하게 짚어낸 위의 글을 발견했다.

.... 그는 속으로 그렇게 다짐을 둔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홀로 선 사람. ....
.... 그는 자기가 현재 처한 상황에서 과도한 야망을 품고 싶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차라리, 완전한 단식을 하나의 이상으로, 열망할 수는 있어도 달성할 수는 없는 완벽한 상태로, 마음에 담아 두기로 했다. 그는 굶어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매일같이 자기에게 그 점을 상기시켰다. 그가 원하는 것은 단지 자기에게 정말로 중요한 문제를 무엇에도 구애되지 않고 생각하는 것뿐이었다. 그것은 당분간 그 사건을 마음속에 최우선으로 새겨 둔다는 뜻이었다. ....
Paul Auster, '뉴욕 3부작 - 유리의 도시' 중

그러다가 폴 오스터의 다른 책에서 열망해왔지만 닿지 못하는 상태를 갈구하는 남자를 만났다. 가 닿지는 못하지만 끊임없이 열망하는 그 상태, 동적인 정의 상태에 접어 든 그 남자.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결국 파멸에 이르지만, 한번도 자신이 되어보지 못한 삶에 비할 수 있을까. 그 빛나는 한 순간을 경험한 삶을 두고 어떤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탐나는 것.

소수는 아름답다.

by iconclasm | 2009/10/20 04:17 | 읽은것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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